얼마전 미모의 천재작가 한 분이 마감하느라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던 중 전주에서 서울까지 걸어오는 꿈을 꿔서 더 피곤한 기분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 발언에 문득 궁금해져버린 나는 진짜로 서울에서 전주까지 도보로 얼마나 걸리는지 지도 앱으로 확인을 해 보려 했으나 카카오맵은 직선거리로 30km, 네이버지도는 50km 거리를 벗어나면 도보 여행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떴다.


그럼 50km 이하로 잘라서 동선을 짜면 되겠네?


해서 만들어보았다. 신나게 떠나보는 서울-전주한옥마을간 도보여행.

1) 수인분당선 라인을 따라 10시간 24분을 걸어 한국민속촌을 방문한다. 요즘 물놀이 이벤트가 있다고 한다.


2) 그 다음 기흥호수를 지나 경기대로와 천안대로를 따라 걸으면 15시간 1분 후 천안에 도착.


3) 호두과자를 좀 사먹고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11시간 51분 후 공주로 넘어가서 나태주풀꽃문학관을 방문한다. 운이 좋으면 꽃밭을 돌보고 있는 나태주 시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4) 나태주 시인의 사인을 받고 공주 밤라떼 한잔을 마신 뒤 논산 딸기축제장까지 8시간 52분을 걷는다. 아쉽게도 딸기축제는 3월에 끝났으니 지금 간다면 강경시장에 들러 젓갈이라도 사자.


5) 마지막으로 논산에서 12시간 38분만 더 걸으면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한다.
서울로 올라갈 때는 반대 순서로 가면 된다.


순수 도보로만 약 59시간이 소요되는 하프 국토대장정인데 꿈에서는 이 거리를 반나절만에 걸어서 도착했다고 하니 축지법이 기본 옵션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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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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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 벽화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 이 작품은 이탈리아어로 Il Cenacolo 혹은 L'Ultima Cena라고 불립니다.
첫번째 이름인 Il Cenacolo는 로마시대 당시 보편적으로 가정집 2층에 만들던 큰 식당을 가리킵니다. 성경에서는 '다락방'이라고 일컫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다락방의 느낌과는 다르죠. 이때 당시 큰 집을 지을 때 식당은 2층에 두는 것이 보편적이었다고 합니다.
두번째 이름인 L'Ultima Cena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저녁식사를 가리킵니다. 두 이름 모두 체나(Cena)라는 단어가 들어갑니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 체나라는 단어를 주목하고자 합니다. 영어로는 대개 이 그림의 제목을 Last Supper라고 쓰지만 원제에 나오는 체나의 어원을 찾아본다면 Supper 보다는 Dinner가 원뜻에 가깝다고 봅니다.

로마생활사를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포에니 전쟁 이전 로마인들은 하루 두끼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옌타쿨룸(Jentaculum)이라는 이름의 아침식사와 체나(혹은 케나, Cena)라는 이름의 오후식사였죠. 아침식사는 일어나자마자 빈 속을 채우기 위해 간단하게 먹었으므로 제대로 된 식사는 오후 2~4시에 먹는 체나 때 푸짐하게 한 번 먹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가끔 귀족과 부자들은 베스페르나(Vesperna)라는 이름의 저녁식사 겸 파티를 열기도 했지만 매일 먹는 끼니는 아니었습니다.
신체 건강한 성인이 오후 4시에 밥을 먹고 자기 전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눕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먹는 음식'이라는 뜻의 메렌다(Merenda)를 먹기도 했는데 이것도 아침처럼 죽 한 그릇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뜻하는 단어 중 Supper라는 단어가 프랑스어로 밤참을 가리키는 souper, 즉 수프(soup)에서 온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포에니 전쟁에 승리한 후, 카르타고를 물리치면서 지중해 일대의 무역을 로마제국이 장악한 이후부터 기록에 프란디움(Prandium)이라는 '정오에 먹는 식사'를 뜻하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합니다. 정오에 먹는 식사, 즉 점심식사가 등장한 겁니다. 뱃속에 점 하나 찍어 점심(點心)인 동양권과는 달리 풍족한 환경이 불러온 점심식사 프란디움은 이후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문화에 남아 점심을 가리키는 단어 Pranzo가 되었고, 이탈리아인이 현대에도 점심을 유독 든든하게 잘 챙겨먹는 이유가 됩니다.
성경에서 이 프란디움, 즉 점심이 등장하는 것은 오직 누가복음 뿐으로, 하나는 부유한 바리새인이 초청한 식사이며 다른 하나는 실제가 아닌 비유에서 등장합니다. 이 시기 비 로마인이 점심을 먹는다는 것은 삶이 풍족하다는 뜻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성기에 들어간 로마는 기원전 2세기 이후 많은 식량을 식민지와 속주에서 들여오게 되었고, 제대로 먹는 점심식사가 등장하면서 저녁식사였던 체나의 시간대는 자연스럽게 점점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도 이탈리아어로 저녁식사는 체나이며, 체나 이후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었던 메렌다(Merenda)는 위치를 바꾸어 점심과 저녁 사이 간식을 가리키는 단어로 변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어로는 현재 뜻이 변했지만 메렌다라는 단어가 원래 늦은 저녁에 먹는 죽 한 그릇을 의미했으므로 프랑스어 Souper, 영어 Supper 또한 저녁식사를 뜻하게 됩니다. 현재도 Supper는 가정집에서 격식없이 먹을 때, Dinner는 좀 더 격을 갖춘 것을 가리키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대충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식사였으니까요.

최후의 만찬이 기록된 성경 본문을 보면 식사 시간은 해가 저물 때~이후이므로 틀림없이 저녁식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허기를 채우기 위해 죽 한 사발 비우고 감람산에 올라가신 것은 아니었으므로 영문명 The Last Supper보다 The Last Dinner가 더 맞다고 봅니다. 만약 진짜로 supper, 즉 죽을 먹는 메렌다(Merenda)였다면 예수님은 마지막 저녁 시간에 빵 대신 대접에 국자로 죽을 퍼 주며 "받아 먹어라" 하셨을 테고 아마 새벽 즈음엔 모두들 허기가 졌을 테지요. 그리고 다 빈치의 작품은 'L'Ultima Merenda'라고 불리게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식사는 메렌다가 아닌 체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화롭지는 못했을지라도 제법 든든한 한 끼 식사를 마쳤을 겁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일단 배불리 먹이고 보시는 분이셨으니 당연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끝!

Posted by 박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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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읽은 것 2024. 4. 24. 17:30

좋은 아이디어로 시작하는 글은 많고 좋은 소재를 잘 풀어내는 작가도 많은 시대에 '어느날 갑자기 아무도 죽지 않게된 한 나라의 이야기'는 신선하지만 충격적일 정도의 소재는 아니다. 오히려 소재는 압도적으로 흥미롭지만 용두사미로 끝맺는 작품이 너무 많은 게 문제인 요즘이니까.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런 소재를 가지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지였고 끝까지 흥미있게 읽었다. 노벨상은 역시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중간중간 놀라운 시도들이 보이는 것에 비해 끝맺음은 잔잔하지만, 수미상관을 이루면서 서두와 마지막 문장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죽음에 대한 사변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소재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인류역사 내내 지겹도록 회자되는 사랑 이야기를 한방울 첨가하는 실력도 절묘하다.

mors obdormiv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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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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