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쓴 글을 이글루스 블로그 없어지기 전에 옮겨왔습니다. 이제는 혈액형보다 MBTI에 열광하는 시대가 왔네요. 하지만 그 열광하는 방식의 뼈대는 동일해 보입니다.
우리가 무슨 심리학적 분석 내용인 것 처럼 말하는 혈액형별 성격 특징, 요즘도 혈액형 분석에 대한 책들이 거창한 이름을 달고 쏟아지고 있지만, 이 현상의 발원지는 학자의 이론이 아닌 소설가의 픽션입니다.
그리고 원문은 '혈액형에 따른 성격 분석'이 아니라 '혈액형 점' 이죠. 한번 혈액형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일란성 쌍생아」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자 하나와 난자 하나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지면 격렬하게 세포분열을 시작하게 되는데, 분열이 세포막 안에서 이루어지다가 순간 세포막째로 완전히 분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일란(一卵)성' 쌍둥이죠.
무슨 말이냐구요? 일란성 쌍둥이는 생일도, 혈액형도 완전 동일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성장하면서 약간씩 변하는 외모와 지문 정도일 뿐. 그러나 성격까지 똑같은 쌍둥이는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성장과 인격형성에는 유전적 요인 외에도 수많은 변수가 따르게 됩니다. 그런데…그런 인간을 오직 하나의 잣대만으로 파악하려는 행동, 즉 혈액형 등으로 성격을 테스트하는 행위가 과연 현실적으로 올바른 답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요?
소위 '이건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 느낌, 자기 주위 몇 사람들, 또는 어느 회사 어느 한 부서에서 조사한 결과, 어느 한 유치원에서 조사한 결과 등 극히 한정적인 통계만 뽑아보고 결론을 내린 것이 대부분입니다.. 솔직히 가장 그럴듯한 예를 찾는데 성공했다는 거지 조금만 범위를 넓히거나 바꿔보면 진실은 곧바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세히 알아보면 그런 조사를 하지도 않고 나온, 이른바 '소설'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제일 먼저 배신한다, 제일 먼저 퇴근한다 등등. 그 사람들이 실제 퇴근시간이나 배신한 사례들을 세어봤을까요?
사실 유전학 수준에서 따진다면 각 혈액형을 정하는 유전자 가까이에 성격을 정하는 어떤 유전자가 아주 가까이 위치하기 때문에 두 유전자가 함께 유전되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란 정도의 이야기정도는 나와야 하겠죠.
하지만 그런 연구결과는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게다가 성격이 어느 한 유전자로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주변환경의 엄청나게 영향 또한 엄청나게 크죠. 가족관계, 교육환경, 친구들, 경제상황 등 여러가지 요인들이 그 사람의 성격을 형성해 오는데 큰 역할들을 한다는 건 상식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그토록 매달리는 혈액형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피는 외모와는 달리 몸속에 흐르니까 성격을 좌우할 수 있다고.
혈액형이란 혈구가 가지고 있는 항원의 유무 또는 조합으로 혈액을 분류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항원은 400개가 넘으며 임상적으로 중요한 것만 20여가지가 넘구요. 우리가 흔히 ABO식을 말하는 것은 수혈시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항원이기 때문입니다.
혈액형으로 인간에 대한 뭔가를 알아내려는 이 바보같은 행위는 독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게르만 민족이 제일 뛰어나다는 이론을 만들어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거짓말에 거짓말을 계속 늘어놓던 이 사이비 과학자들은 혈액형이 알려지면서 민족별로 혈액형 분포가 약간씩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우생학에 끼워넣는 우매한 행위를 시작합니다. 이 증명될 리 없는 얼렁뚱땅 이론을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던 일본인 의사 하라가 일본에 들고 가게 되면서 일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혈액형 이론은 그렇게 일본에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1927년 8월. 심리학자 후루카와가 '주위 사람들' 319명을 조사한 결과를 가지고 혈액형으로 기질을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때가 혈액형 이론의 정식 시작으로 추정됩니다.
인종간의 우월성 대신 '기질'이라는 말을 쓴 것일 뿐이지요. 그리고 1971년, 이른바 혈액형 '점'이 등장을 하게 되는데요, 위의 후루카와 등의 연구에 영향을 받은 노오미라는 '작가(과학자가 아닙니다. 작가입니다)'가 혈액형에 관한 책을 냈고 그것이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어 마침내 우리들이 알고 있는 '혈액형별 성격 분석'등이 등장을 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은 그나마 덜하지만 80년대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베끼고 자기 느낌이나 추측을 덧붙여 더 많은 책을 찍어냈으며, 노오미가 죽은 후에도 그 자식이 대를 이어 이론을 부풀려 나간 것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짚어볼 사실 한가지. 앞에서 말했다시피 사람의 혈액형은 적혈구에 존재하는 항원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 항원의 수는 무려 400여개. 그런데 혈액형 점에서 따지는 것은 아무 의학적, 과학적 근거 없이 ABO식 혈액형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자기 혈액형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혈액형으로 세세히 분류해서 글을 써봤자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당연지사. 사람들-한국 또는 일본-은 대부분 자신의 ABO식 혈액형이 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독자들이, 또는 점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맞춰보기 위해선 거기까지밖에 할 수가 없는 겁니다.
Rh까지 따져봤다면 더 정확한 내용이 나올텐데 그런건 아무도 생각하지도 않고 시도하려고 하지도 않죠. 이유는 하나. 자기가 쓴 책이 많이 팔려서 돈을 벌 수 있느냐, 또는 자기한테 점보러 사람들이 많이 와서 돈을 벌 수 있느냐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치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해 얻은 무슨 과학이론이나 엄밀한 통계이론인 것처럼 포장되어 퍼져나가 열렬한 신자까지 생긴 마당입니다. 서점에 나와있는 혈액형 책들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일본인, 그러니까 노오미를 포함한 그의 추종자들이 쓴 책입니다. 책에는 마치 이 사람들이 과학자나 대단한 연구가인 것처럼 포장되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사이비 과학자나 삼류 글쟁이일 뿐입니다. 물론 그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덕에 유명해지거나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있습니다.
혈액형 이론에 관한 과학적인 증명은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엄밀한 통계학적 조사로도 의학조사로도 수십년에 걸쳐 시도되어 왔지만 증명할 수 있는 단서는 하나도 얻지 못했죠.
하지만 혈액형 점은 그 내용이 점점 방대하고 세밀하게 변했습니다. 단순한 성격 나누기에서부터 궁합, 공부방법, 직업, 대인관계, 인생설계…
사실 혈액형 점은 아주 대표적인 「사이비 과학」의 예로 현재는 심리학에서만 연구가 일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혈액형 연구가 아닌 '왜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이론에 매혹당하는 걸까?'라는 주제로 말이죠.
그리고 이런 혈액형 점 유행이나 연구 등은 당연히 '일본'에서만 진행중입니다. 일본의 얼치기 작가가 만들어낸 일제 사이비이론이니까요.
일본의 과학자나 지식인들은 이런 엉터리 이론이 존재한다는 점 자체를 일본의 부끄러움의 하나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글을 보고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마음을 과학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지만 피는 사람의 마음이 아닙니다.
참조:대한적십자사(울산) 홈페이지, 네이버 지식IN. 네이버 오픈사전.
제가 이런 이야기를 열내면서 하면 당장에는 사람들이 손을 내저으면서 말하더군요.
"알겠는데 이거 다 재미로 하는 거야. 재미로 그냥 웃자고 하는 건데 뭐 어때?"
문제는 저 같은 사람 앞에서 "재미로 한다"면서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서면 "너 혈액형 뭐야?"하면서 물어보고 그걸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우를 또 범하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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