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읽으신 분 중 어떤 책에서는 도입부에서 유비가 어머니 드릴 차를 사러 갔다가 위기를 맞고 장비가 그를 구해주자 가보인 보검을 줬더니 그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가 차를 내버리는 대목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여러 버전 중에서도 요코하마 미쓰테루의 만화 전략 삼국지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꽤 계실 테지요. 아래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중국이 아닌 일본에서 창작된 것으로 요시카와 에이지판 평역 삼국지에서 기원합니다. 요코하마 미쓰테루의 만화판 또한 요시카와 에이지판을 원작으로 삼고 있으니 내용이 같을 수 밖에 없죠.


국내에 나온 삼국지 베스트셀러 판본 중에서 박종화, 이문열, 황석영 삼국지에는 이런 내용이 없으며 요시카와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정비석 삼국지에는 차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국하면 차의 원산지이며 차 없이 못 사는 사람들의 나라로 유명한데 어째서 중국판 삼국지에는 그럴싸하게 들리는 유비의 차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차를 안 마셨으니까요.

후한시대 중국 지도를 살펴봅시다.


유비는 고구려를 코앞에 두고 있는 유주 출신입니다. 북방 태생이죠. 그리고 지금에야 중국 전역에서 차가 재배되지만 원래 차의 원산지는 미얀마와 가까운 쓰촨, 윈난, 구이저우 등 위 지도로 치면 익주, 운남 등 저 따뜻한 남쪽나라죠. 황하문명을 기반으로 하는 중원의 양반들은 삼국시대만 해도 저쪽 지역을 미개한 '남만' 오랑캐 땅이라 불렀으니 그 동네에서 마시는 쓴 물을 좋아할 일이 없었습니다.
사마염이 세운 진나라가 쪼그라들어 동진이 되었을 때 남쪽 출신들은 차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여전히 차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 수액(水厄, 재앙의 물)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세설신어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7세기 전까지 오호십육국이니 위진남북조니 해서 중국땅이 여러 나라로 갈라졌던 시절 대체로 전투력은 북방민족이 강력하기 마련, 남쪽은 항상 털리기 쉬웠습니다. 유목민계 북방민족들은 주로 양젖, 소젖, 말젖 등 유제품과 술을 즐겼는데 그들이 보기에 저 허약한 남쪽 찌질이들은 이파리 달인 물을 마신답니다. 그러다보니 남제 출신 장군 왕숙이 선비족의 나라 북위에 투항한 뒤  양고기와 양젖을 먹으며 차 따위는 유제품 음료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며 차를 낙노(酪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북조의 장군과 귀족들이 보기에 유제품은 고귀한 자신들이 먹는 음료이며 남조에서 투항하고 밑으로 들어온 하찮은 한족이 마시는 차는 저급한 음료였던 셈입니다.

끊임없는 전쟁의 시대를 지나 618년 당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중원을 안정시킵니다. 수백년간의 전쟁 때문에 화북은 황폐해졌고, 자연스럽게 그동안 꾸준히 개발된 강남으로 사람들이 몰렸고, 무를 숭상하던 흐름도 이제 강남의 문인들로 중심축이 바뀌게 된 데다 불교문화가 번성하게 되면서 정신을 맑게 해 주는 차는 당나라 문화에 딱 맞는 음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당나라시기부터 차는 중국땅을 휘어잡는 음료가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무진장 차를 마셔댑니다. 당나라 중반쯤 되자 요즘 한국에 카페 들어서듯 곳곳에 찻집이 들어서고 그만큼 차의 재배지역, 생산량, 판매량이 상승합니다. 근데 요 즈음 해서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755~763)으로 기반 산업인 농업이 타격을 받아 예전만큼 세금 거두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근데 요즘 떠오르는 산업이 있네요? 그래서 당 덕종은 793년부터 차에 세금을 부과합니다. 처음에는 10퍼센트, 나중에는 15퍼센트, 그 이후에는 지역을 넘을 때 일종의 관세까지 거둡니다. 국고 수입에서 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늘어나자 847년에는 재배하는 농민과 상인을 보호하는 법까지 만들어 통제를 하다가 나중엔 직접 공물로도 차를 바치도록 합니다. 공물(貢物)로 차(茶)를 황실에 바친다...그렇습니다. 공차(貢茶)의 등장입니다. 지금 버블티 체인점으로 유명한 공차는 공차, 즉 황실에 바칠 공물용 차처럼 최상급의 맛을 내겠다는 뜻입니다.


송나라 시대로 가면 공차 제도는 나중에 최상등급의 차를 황실에 바치고 나머지는 정부에서 직접 유통을 독점적으로 맡는 전매제도로 바뀝니다. 예로부터 전매품이었던 소금과 함께 말이죠. 상인이 정부에 대금을 지불하면 수량, 시간, 지역이 적힌 차 인수권을 받아 재배지에서 차를 받아오고 농가는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차의 전매는 12세기쯤 가면 국고 수입의 1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소금은 거의 수입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였으니 소금하고 비빌 대상은 아니었지만, 차라는게 부피와 무게 대비 가치가 높단 말이죠. 군대에서는 군량을 구입하면서 대금으로 차 인수권을 주기도 하고, 북서쪽 강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서역으로부터 차와 말을 교환하는 식으로 물자를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차를 주고 말을 구입하는...그 교역로를 가리켜 차마고도(茶馬古道)라고 합니다.


이렇게 차를 팔아 수입을 얻는 것은 오랫동안 중국의 중요한 교역수단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차를 좋아하는 나라들이 점점 늘어만 갑니다. 그리고 이놈의 차에 푹 빠져버린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영국입니다.
차에다 어마어마한 관세를 붙여 들여오다보니 영국 정부의 재정은 차가 많이 들어올 수록 윤택해졌지만 중국과의 무역은 항상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식민지에도 무거운 차세를 매겼더니 이번에는 아메리카 식민지가 들고 일어나네요? 그렇게 미국에서는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곧 독립을 하게 되죠.


이후로도 영국인의 차 사랑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일반 가정의 월 수입 중 5퍼센트가 차를 사는 데 쓰일 정도로 수요가 높았고 그 결과 차는 대 중국 무역의 9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차를 수입하느라 화폐로 쓰이던 은이 바닥날 지경이었던 영국은 아편을 밀수출해서 메꾼다는 경이적인 발상을 해냈고...그 결과는 아시다시피 아편전쟁으로 이어져 홍콩이 영국령으로 변하는 계기가 됩니다.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윤덕노, 더난출판)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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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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