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의 추억(1995~6년경)
동네에 처음 PC방이 생긴 것은 95~96년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도서관 인터넷 열람실 죽돌이였던 저는 PC방의 환경에 비교적 쉽게 녹아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스타크래프트를 접하게 되었는데…저보다 2주 먼저 배운 같은 반 녀석이 가르쳐주겠다며 한판 하자더군요.
저는 프로토스, 상대는 테란이었습니다. 1:1용 섬맵에서 자원이 다 떨어질 때 까지(...) 채취를 하던 중, 공격이 들어오더군요. 열심히 막았습니다만, 처음 해보는 사람이 뭘 알겠습니까. 저는 괴멸 직전의 상황에서 녀석이 병력을 물리고 돌아가자 질문했습니다.
「수송선 같은 거 이 게임에 있냐?」
「응」
「뭔데?」
「알아서 찾아봐.」
…나 오늘 처음인데…
그 인간의 심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저는 눈을 다시 모니터로 돌렸습니다.
유닛을 순서대로 뽑아서 실험해보려고 했는데 모아둔 자원이 달랑달랑한 상태더군요. 이미 미네랄과 가스는 바닥난 상태.
그래서 저는 모든 생산 건물을 돌아보며 수송선으로 짐작되는 물건을 찾았습니다.
스카우트…절대 아닐테고, 아비터? 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때 눈에 팍 들어온 캐리어!
이놈이다! 이름도 캐리어잖아! 뭔가를 옮길 거라고! 한대를 뽑는데 시간이 무진장 오래 걸리는 걸 봐도 뭔가 보여줄 것이 분명해! 나왔다! 저 커다란 동체를 봐, 드라군도 태우겠다!
…어, 안되네.
하지만 전 캐리어가 수송선일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미네랄도 40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선택도 없었죠.
저는 캐리어에 문제가 있는지 다시 한번 메뉴를 살펴봤습니다.
인터셉터…가로챈다고?
이거야!
캐리어에서 인터셉터가 내려와서 프로브를 싣고 가는거야!
결국 며칠 뒤 게임잡지에 적힌 설명을 보고서야 셔틀이 수송선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