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은 이야기

꿈 이야기 - 팬더와 가재와 오징어와 트리피드와 암모니아(2006년)

박강노 2023. 5. 23. 16:38

2006년 만우절 아침에 쓴 글. 이글루스에서 백업해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꿈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말해줬더니 다들 아침부터 폭소했답니다.

아래 내용은 제 꿈을 정리한 것입니다.


70년대와 SF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콩나물 시루같은 고등학교 교실.

전학생과 학교 짱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가운데 소심한 나는 뒤쪽에 쪼그리고 앉아 짱의 횡포를 지켜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죠.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교실 밖에서 갖가지 비명이 들리며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 발로 걷는 거대한 팬더가 교실 벽을 부수며 나타났습니다. 문 근처에서 다투고 있던 전학생과 짱은 한방에 죽어버렸고, 용케 벽에 깔리지 않은 학생들은 우르르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학교는 무너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시가지에 우글우글한 팬더들을 피해 뒷산으로 도망쳤습니다.

그곳에는 같은 반 친구의 집이 있었습니다. 친구는 저의 진정한 기억을 찾으라면서 혼자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곧이어 집 외벽이 무너지면서 상투과자같이 생긴 커다란 기계덩어리가 나타나 하늘로 떠올랏습니다. 그리고 뒷산 입구에서부터 올라오던 팬더 떼들에게 돌진해 자폭!

전 폭발에 휘말려 멀리 날아갔는데, 어느 커다란 식물원 분수에 쳐박혔습니다(서울에 큰 식물원과 분수가 있는 곳이라면 남산 식물원인데...거긴 아닌 것 같았어요). 정신을 차려 보니 커다란 나무들이 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톨킨 소설에 나오는 엔트 쪽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괴기식물 트리피드(존 윈담의 SF소설에 등장하는 흉폭한 보행형 식물)!


그러나 그들은 팬더처럼 저를 공격하지 않았고, 곧이어 그들을 보면서 저는 자신의 정체를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지구를 지키는 자들이었고 제 자신은 이들을 통솔할 수 있는

암모니아 왕국(이름이 뭐 이따위야)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이름이 별로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현재 제가 다룰 수 있는 트리피드 떼를 사용해 팬더와 호각으로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해상에서 적들이 몰려오더군요.

바닷가재가요.

크기 2미터의 가재떼가 바다를 뒤덮으며 몰려오고 있었습니다(그래봤자 물 위에서 얼마나 산다고)
저는 불러낼 수 있는 해저생물을 소환했습니다.
길이가 거의 30미터는 될 듯한 커다란 오징어 한마리가 물 속에서 튀어나왓습니다.
오징어는 바닷가재의 장사진을 향해 돌진하면서 회전을 시작했습니다.
촉수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대회전햇고, 오징어의 머리(사실은 몸통이지만)가 가재떼를 꿰뚫으며 진형을 격파했습니다. 회전에 휘말린 가재들은 산산조각나며 껍질을 비산했지만 워낙에 수가 많았는지, 오징어의 온몸이 가재들의 인해전술에 뜯기고 찢어지면서 차츰 회전속도가 줄어들면서 결국 가재에게 포위당해 죽고 말았습니다.

오징어의 죽음…정말 눈물나더군요.

저는 오징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갈매기 떼를 불러 남은 가재 떼를 소탕했습니다.
오징어의 전사를 지켜보며 직접 전투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든 저는 하늘을 날아 이동을 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날긴 나는데 맘대로 날 수가 없었습니다.
뭔가가 걸리적거려서 내려다보니까 제 차림새가 알몸에 이불 하나를 걸치고 있더군요.
그리고 덧붙여서 아랫도리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으면 초능력도 쓸 수 없다는 것까지 깨달았습니다.
일단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불을 대충 허리춤에 묶고 물 위에 안착했습니다(초능력자니까 물 위에 그냥 서 있을 수 있다는 설정이 허용되었는지…).

 근데 저쪽에서 청바지를 입은 키가 큰 사람이 저처럼 물 위에 서 있는게 아니겠어요?


마왕 이윤석

그냥 연예인인줄 알았는데 그 정체는 마왕이었던 겁니다.

우두머리간의 싸움이 펼쳐졌습니다. 제가 초능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허리춤의 이불 매듭을 단단히 매는 것을 본 이윤석은 자신의 바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바지 위에 손수건을 대 바지 위에 덧씌워 기저귀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구를 지키기 위해, 혹은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서로 바지를 벗기는 혈투를 벌이게 된 두 사람


아쉽게도 이때 부모님의 목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습니다.

다음엔 꼭 바지 입고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