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시키기(Ex Libris)
2013년 9월 1일에 쓴 글.
오늘도 지혜로운 여행자들은 트렌튼 행 펜 스테이션 기차역의 시끄럽게 들어찬 대합실을 피해 후문쪽에서 여유있게 기차를 기다린다. 이번 길에는 오며가며 앤 페디먼의 에세이집 "서재 결혼시키기(원제 Ex Libris)"를 다시 읽었다. 이 책은 정말 책에 파묻인 사람의 인생이 어떤지를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책을 사랑하는 법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 대해 감탄했었다. 그녀의 분류에 따르면, 나는 '궁정식 연인'에 해당했었다. 책에 흠집이 나는 것이 싫어 밑줄을 치는 대신 노트에 옮겨 적는 식으로 책을 보고 나서 곱게 모셔놓는 스타일. 하지만 내 독서의 근원을 되새겨 올라가 보면 나는 그녀와 같이 '육체적 연인'이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말 그대로, 나는 책과 함께 잤다. 아직 꼬마였던 90년대 초반엔 국어대사전 두 권(1권이 ㄱ~ㅈ, 2권이 ㅊ~ㅎ과 인명사전으로 구성되어있었다)을 펴놓고 5천페이지짜리 글자덩어리 위에서 뒹굴며 읽다 잠드는 바람에 쌍디귿 부분 몇쪽이 너덜너덜한 것을 기억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책을 읽으며 전체를 먹어치울 듯이 너덜거리도록 읽는 것도, 자신만의 각주를 다는 것도 나름대로 책을 사랑하는 법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두번째 차례인 이번에는 '현장 독서'의 경이감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다. 저자의 인용에서 로마사와 갈리아 전기를 로마에 직접 가서 그 현장을 바라보며 읽을 때 느끼는 경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침에 선배 부부 댁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아침에 보고 7번 전철을 타고 돌아오고 있는 순간 이 대목을 읽으니, 문득 내 손에 들린 것이 이 수필집이 아니라 위대한 개츠비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닉이 개츠비와 함께 허드슨 강을 건너 퀸즈의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그 위에 지나고 있었던 7번, 그 안에 내가 타고 있는 것이다. 이 냄새나고 오래되어 아름다움이 사라져버린 이 도시에 아직 경이감을 느낄 부분이 있었다는 점이 새롭다. 오직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미 정해져버린 시각적 이미지인 영화의 장면이 그대로 덧씌워진 까닭에 내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부분이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내 손에 책이 들려 있었다면 나는 전철에서 내릴 때 까지 그 순간을 되풀이해서 맛볼 수 있었겠지.
우리가 검색한다-이곳저곳을 들추어 찾아본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browse'라는 단어는 원래 신문이나 책의 본문을 찾을 때 사용하는 단어인데, 이 단어에는 벌레가 이파리를 갉아먹는다는 뜻도 있다. 말 그대로 책 속의 이야기를 부분 부분 섭취하는 것이니까 맞는 말이다. 식당의 메뉴는 몇번을 맛봐도 그대로지만, 수필은 갉아먹을 때 마다 새로운 맛이 난다.
"책은 음식이며, 도서관은 몇 개의 접시에 실려 나오는 고기 요리다. 우리는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좋아하거나 필요해서 먹는데, 대부분은 좋아해서 먹는다."
- 홀브룩 잭슨